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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노조 20년사』 백서 발간에 즈음하여
| 편집부 | 조회수 773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여 년의 흔적들

‘노동자도 인간이다’ 라며 자본과 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한 1987년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난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1987년 7월 울산에서 움터 나와 전국으로 들불처럼 타오른 노동자 투쟁은 전국에 민주노조를 건설이라는 성과를 남겼다.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싹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과 1980년대 중반기 구로공단의 민주노조운동은 군부독재정권의 탄압으로 강제해산 됐지만, 대투쟁으로 전국에 다시 건설된 민주노조들은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도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민주노조운동’을 깊게 뿌리 내렸다.
20여 년이란 시간은 강산이 변했어도 두 번이나 변했을 짧지 않은 기간이다. 민주노조운동은 단위 사업장의 파업투쟁에서, 지역 연대투쟁으로, 그리고 전국 차원의 총파업투쟁을 벌이기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로 노동자 단결의 폭은 지역조직에서 전국조직으로, 현재 산별노조 결성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에 참여하는 노동자들 역시 생산직 노동자, 사무전문직 등 정규직 노동자 중심에서 간병인, 청소원, 보육교사, 학습지교사 등 노동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성장과 발전만 이룬 것은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총의를 모아가던 ‘민주성’의 전통이나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성’의 원칙이 흔들리기도 했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외침 속에 전국 노동자들을 묶어 세워 나갔던 ‘연대정신’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의 노동자연대가 비정규직만의 연대투쟁이라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무관심을 비판하기도 한다.

현대자동차 노조운동 역시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흐름 속에 부침을 같이 해 왔다. 현대자동차 노조운동은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과 퇴보의 경험을 온전히 안고 있다. 거꾸로 전국 노동자들의 다양한 투쟁과 조직의 기억에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활동의 경험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1987년 노조건설투쟁 이후 매해 임금인상과 단체협약투쟁을 기본으로, 울산 노동자들의 단결을 높였던 지역연대투쟁, 현대그룹 민주노조들의 공동투쟁, 1991년 성과급배분투쟁, 1993년 현총련 공동임투, 1995년 양봉수 열사투쟁, 1996~7년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을 거쳐 1998년 고용안정투쟁, 2005년 류기혁열사와 비정규직 투쟁까지 여러 투쟁의 역사를 거치면서 승리에 감격하기도 하고, 패배 속에 좌절하기도 했다.
조직적으로는 초기 어용노조 대 민주노조의 구도를 극복하고 민주노조운동의 주도 아래 다양한 조직 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현대그룹 차원의 현총련, 민주노총 결성시기 울산 지역노동운동의 중심으로 그 역할을 다했고, 나아가 산별노조건설을 위해 금속연맹을 거쳐 2007년 금속노조 건설의 중심 주체로 발돋움했다.
다른 한편 IMF이후 고용문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고,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이 따가운 시선을 받고, ‘대공장 이기주의’ 논란이 심심치 않게 입에 오르내리면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관심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경험’ 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노동자의 것으로

2008년. 민주노조운동의 외적 정세 역시 만만치 않다. 친자본가 세력인 이명박 정권은 등장하자마자 코스콤 노동자투쟁을 공권력으로 침탈하고, ‘백골단 부활’을 적극 검토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적어도’ 5년간 법과 질서를 앞세운 정권과 자본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탄압이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처럼 민주노조운동은 한편에서 ‘외적’ 탄압에 대비하면서 다가올 ‘격투’를 준비해야 하고, 다른 한편 걸어온 길을 찬찬히 되돌아보면서 ‘내적’ 위기를 돌파해야 할 시점이다. 그 동안 운동의 침체와 위기 속에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여러 시기를 돌아보며 노동운동의 방향을 가늠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또는 새롭게 노조활동을 시작하면서, 긴 시간의 역사를 알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모색의 시기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2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새롭게 보듬어 가려는’ 시도는 운동 내부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민주노조운동이 자신의 좌표를 더 이상 다른 나라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역사’라는 커다란 자산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 자산을 현실로 퍼 올리는 일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앞장서 나가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노조운동은 전국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사업장 수준에서도 ‘돌아보기’가 필요하며, 그를 바탕으로 다각도의 소통과 공유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현자노조 역사복원 작업은 현자노조만의 일이 아니고, 민주노조운동이 새롭게 발 돋음 하기 위한 활동의 하나이다.

이처럼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20여 년의 투쟁과 조직의 경험이라는 ‘거대한 보고’ 위에 보다 새롭게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을 세워내기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시작했다. 보통 역사를 돌아보는데 있어, 개인 또는 집단의 성과를 중심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성과 속에서 발전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계와 오류를 분명히 아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낀다’고 한다.
성과를 충분히 활용하고 오류와 한계 역시 제대로 짚고 가는 것만큼 큰 자산은 없다. 역사는 결코 과거 자체가 아니며 많은 부분 현재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에 살아있는 과거, 과거에 투영된 현재’ 이것이 역사다. 역사는 그 주체들이 스스로 ‘객관화’ 시켜 내고 ‘내면화’하지 않으면, 종이와 문자일 뿐이다.
이제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은 민주노조를 세워내던 초기 열망으로,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건설에 울고 웃던 ‘노동자 계급의 눈’으로, 지나온 투쟁과 조직의 경험을 돌아보아야 한다. 역사의 복원은 단순히 사라진 자료를 찾아 ‘글’로 정리하고 ‘책’으로 출판해 세상에 내놓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20년 동안 쏟아 온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피와 땀’, 그리고 ‘열정’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보듬고 나아갈 바를 곧추 세우는 일이다.


기록, 기억을 모아 『백서발간』 작업으로

현자노조의 ‘백서 발간사업’은 같이 돌아볼 수 있는 ‘자원’ 을 모으는 기초 작업이다. 그러므로 백서작업의 기본원칙은 그 동안의 활동을 ‘사실’ 에 바탕 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두고 있다. 이는 사실 기록을 통해 조합원들이 현자노조에 대해 인식의 깊이와 이해의 폭을 넓이기 위한 것이다. 조합원들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긴 역사 속에 ‘현재의 위치’를 새롭게 가늠하고, 노조 활동의 주체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위한 바탕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작업방식은 지부와 6개의 지역위원회의 역사를 조직별, 시기별, 사건별로 정리하며, 이를 위해 사업보고서, 선전물, 소식지, 노보 등의 공식적인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조합원들의 ‘구술채록’ 작업을 통해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고자 한다.
이 작업 역시 연구팀만의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제대로 된 백서 작업을 위해서는 ‘자료’가 체계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처음으로 조직의 역사를 정리하기에, 그 동안 활동을 기록한 많은 자료들이 흩어져 있는 듯하다. 이에 자료를 모으는 일에서 부터,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자신의 활동 경험을 같이 모아가는 작업까지, 조합원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본다. 백서 발간 사업을 계기로 노조내의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보관하는 일을 일상적인 일로 자리 잡혔으면 한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의 것이며, 보다 중요하게는 현실에서 실천으로 계승하는 자의 것이다. 백서 작업은 말 그대로 ‘현대 자동차 노동자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평가하기 위한 출발’ 일 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후 조합원들이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주체로, 나아가 ‘올바로 계승’하는 주체로 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유경순(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장
『현대자동차노동조합20년사』백서발간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