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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을 보내며
| 편집부 | 조회수 1,464
지난 4월 20일은 서른 한번째 맞는 장애인의 날이었다. 공자의 논어를 빌려 표현하면 이립의 나이를 넘긴 것이다. 이립(而立),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는 시기를 일컫기도 하고, 다른 표현으로는 세상에 스스로 발을 디딛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표현이 오늘에 와서도 맞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과 달리 차별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대단한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를 가진 노동자의 경우 차별의 정도가 더 심해 임금착취와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낙후 된 시민의식과 복지인프라가 장애인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이 스스로 세상에 발을 들여 놓기란 대단히 어려운게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의 반대말을 정상인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사고이며 착각이다. 장애인은 단지 우리보다 몸이 불편 할 뿐, 우리와 하등 다를 게 없는 정상인이다. 단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있을 뿐 이다. 몸의 일부가 불편한 것을 두고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차별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오만이며 편견에 다름없는 짓이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편 가르기의 전형이다. 여기에 우리마저 부하뇌동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살면서 우린 수많은 곤경을 겪게 된다. 그 와중에 몸의 일부를 다치거나 잃을 수 도 있다. 힘 있고 가진 게 많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린 한국사회의 정서상 그 순간 비정상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정상적인 사회활동의 제약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 조차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빈약한 사고란 말인가.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고 만다. 장애인의 날이 시행되고 3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 모순에 빠져있다. 아니 방치하는 지도 모른다. 나보다 뒤처지는 사람이 있어야 그나마 위안을 삼게 되는, 혹은 그런 쪽으로 유도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멸시와 탄압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 또한 기득권 세력들의 눈에 장애인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더 솔직히 표현하면 비정상인 취급을 받는 것이다. 장애인과 노동자는 같은 꿈을 꾼다. 차별없는 세상, 상호 존중받는 세상,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국가와 사회는 이 꿈을 실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국가와 사회라면 말이다. 
선전위원 이상규 
pooreun7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