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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아스팔트 농부’, 고 정광훈 의장
| 편집부 | 조회수 1,945

박  성  국
매일노동뉴스 대표

“난 말여, 집이 없승께 책장도 없어. 박스에 책을 나뒀는디 이번에 가져다 꺼내놨어, 볼라고. 난 집이 없어, 3무! 세 가지가 없어. 집 없고, 돈 없고, 땅 없어. 그란디 마누라는 있어잉.”고 정광훈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생전에 한 얘기입니다. 지난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시위를 주도한 고인이 구속됐다 출감한 후에 한 말이지요. 
면회 온 지인들이 고인에게 책을 넣어줬는데 다 읽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고인의 얘기에선 한 평생 운동가로서 청빈하게 살았던 삶의 자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고인은 생전에‘운동가는 고정자산이 많으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집도 없이 전국의 집회와 시위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을 안타까워 한 후배들이 돈을 모아드렸지만 손사래를 쳤습니다. 되레 집을 마련하라고 모아 온 돈을 어려운 후배들에게 나눠줄 정도였습니다. 
고인은 4.27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 단일후보로 전남 순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선동 민주노동당 후보 지원유세에 참여한 후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고인은 잠시 의식을 찾는가싶더니만 끝내 별세하셨습니다. 지난 5월 13일, 향년 72세의 나이셨습니다.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다닌다’는 고인이 눈에 선합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 있잖아. 거기는 가난뱅이들, 빈민촌 사람들이 차베스하면 미쳐버리게 쫓아다녀. 우리나라는 안 그래. 진보정당이 어디냐. 민주노동당이잖여. 거기는 거지떼들이 쫓아다니면서 달려드는 거 봤어? 안 해! 오히려 인텔리들이 지지하고 그러잖여. 그렇게 돼야 하는 거야. 진보정치라는 건 가난뱅이들이 없는 사회야. 그란디 우리네는 양극화돼 빈익빈 부익부로 떨어져버렸어. 거지는 더 거지되고 중산층은 가난뱅이로 떨어져 버리고. 그래서 쓰겄냐고.”
고인만큼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과제에 대해 쉽고 단순하게 설명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호남 사투리로 구수하게 말하는 그의 입담은 웃음을 주면서도 항상 간절함과 비장함이 담겨있습니다. 고인은 정부가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를 ‘빨갱이’로 몰자“전교조가 빨간 수박을 먹고 씨를 뱉으면‘참교육’이 열리고, 공무원노조가 그리하면‘공직사회 부패척결’이 열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 평생 민중의 벗으로 남기를 원했습니다. 고인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해남군 농민회를 결성했습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에는 전남기독농민회 총무로서 무안 해남 영암 강진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그 후로 고인은 20여 년 동안 농민운동을 이끌며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민주노동당 고문 등 사회민주화에 앞장섰습니다.  
18일은 광주민중항쟁 31주년입니다. 5·18민중항쟁 31주년 전야제에서는 고 정광훈 의장의 영결식이 진행됐습니다. 고인은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영면했습니다. 
광주민중항쟁 31주년을 맞이해 그 날의 노동자·시민의 함성과 구수한 사투리로 민중세상을 염원했던 정광훈 의장의 연설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